내가 믿고 있는 신 보다도
나와 오랜 시간, 더 자주 함께 하고 있는 듯한 지름신.
따뜻한 봄바람이 살랑여서 그런지 지름신이 강림하사
또 '스피커 갖고 싶다' 병이 도졌다.
몇 번의 이사동안 내내 방치되고 있는 CD들을 그냥 처분할까 했지만,
맘먹고 처분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고(사실 그동안 흘려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분명 그냥 살아질 듯)
어쩌지, 어쩌지. 고민만 하다 이번엔 스피커 구입 전 맛보기로 손을 써보기로 한다.
기존에 가지고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에 CDP를 연결해서 사용빈도를 보고 스피커 구입여부를 결정해 보자는 결심인데,
사실 이 구성은 한참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조합. (더해서, CDP+지금 사용하고 있는 SHURE SE846 이어폰 조합도!)
새로 뭘 사는 것도 아니고,
이미 가지고 있는 기기들을 조합하는 건데 왜 여태껏 못하고 있었냐고 묻는다면.
사랑하는 나의 CDP가 파업을 선언한 지 한참이기 때문.
전원은 들어오지만 플레이가 되지 않는다ㅠㅠ
나의 SONY D-EJ725.
CDP가 갖고 싶다는 딸내미 말에 아빠 일을 도와서 알바비를 벌어 사라며
당시 아빠가 공사하는 현장에 데려갔었는데,
결국 공사장에서는 돌덩이 몇 개 옮기고, 여기저기 구경 다니고, 점심 때 되니 아빠 옆에 붙어 배달 온 밥 먹고.
그러고선 바로 그날 오후였나? 다음 날이었나? 전자랜드에 데려가서 골라보라고 해서 갖게 됐던 CDP.
아빠 일 따라가면 저녁마다 땀에 찌들어서 돌아오던 오빠 생각하면
나는 얼마나 곱게 자란 딸이었던가ㅎㅎㅎ
이렇듯 추억이 있어 그런지 고장이 났어도 버릴 순 없어 들고만 있던 기계인데,
이번엔 맘먹고 수리를 맡겨보기로 했다.
몇 년 전 이미 수리를 위해 소니 본사에 문의를 해본 적이 있었는데,
당시에도 출시한 지 오래된 물건이라 부품이 없어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했었다.
종로 어딘가에서 이런 걸 고쳐주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는 곳이 없어 계속 미루기만 하다
이번에 맘먹고 출동!
어디로? 세운상가!
인터넷 서치서치를 통해 알게 된 세운상가의 영진전자에 내 CDP의 운명을 맡겨보자!
청계천 공구거리 따라 동대문 쪽으로 내려가다가,
육교(?)가 나오면 다리 아래로 쭈-욱 들어가면 된다.
영진전자는 육교 계단 근처.
양팔을 펼치면 벽이 닿을 것만 같은 공간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온갖 전자제품들로 가득 차 있었고,
사장님은 그 안에서 뭔가를 열심히 고치고 계셨다.
CDP를 꺼내서 보여드리자마자
여기 이 부품 보이냐, 이 제품은 주로 이런 부분이 끊어져서 고장이 나는 제품이고,
거기 말고 여기 이 부품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.
일단 열어봐야 정확한 문제를 알 수 있긴 한데 맡겨봐라. 하셔서 기대감이 몽골몽골.
점심에 맡기면 저녁쯤엔 찾을 수 있을 줄 알고 갔는데,
먼저 맡겨진 제품들 때문인지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기다려 달라 하셔서 그건 좀 아숩네.
내일은 오랜만에 CDP로 음악 좀 들어보나 했는데.
부디 사장님.
아빠의 사랑을 다시 한번 제 귓가에 들려주시길.
(아, 우리 아빠 고향 집에 잘 계심. 어제도 엄마랑 튤립축제ㅎㅎ)
수리 맡기고 사무실로 그냥 들어오긴 좀 아쉬워
광장시장 들러 봄 공기만큼 상큼한 육회비빔밥도ㅎㅎ
(시장 들러 돌아오다 보니 종로 3가 귀금속거리 쪽에서 광장시장 방면으로 가면 영진전자를 훨 쉽게 찾을 수 있었다!
난 몰라서 한 바퀴 돌았네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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