여름인데 뭔가 보식(補食)이 하고 싶어.
예~전, 예전예전부터 한 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던 인사동 조금에 솥밥을 먹으러 가보자.
일본 어느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외관의 식당.
인사동 초입에 있었는데 모르고 지나다녔었다.
문을 열고 들어서자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.
정확하진 않지만 내가 '조금'이라는 가게에 대해 알게 된 게 거의 20년 전쯤이었던 것 같은데,
아니나 다를까 가게 안에 20년, 그 이상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있다.
카운터에 앉아계신 사장님 머리 위에 걸려있는 시범위생업소 액자.
붓펜으로 쓴 것 같은 글씨에, '지정되었읍니다'에서 풍겨지는 세월의 멋이 장난 없다.
아니,
가게 바닥 타일, 이건 또 무슨 일이야.
박물관이 따로 없네.
강한 주등 없이 간접조명들로 간결하게 꾸며진 가게 안은
전반적으로 어두운 편이었는데,
어두움에서 오는 차분함과 묵직한 분위기가 가게를 더욱 멋스럽게 만드는 것 같았다.
그리고 그 분위기에 한몫하는 가게 안의 손님들.
12시 정각 예약으로 갔었는데 이미 가게 안에는 손님들로 한가득이었고,
그들의 대부분은 분명 몇십 년은 단골로 다니고 계실 법한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셨다.
(물론 2~30대로 보이는 젊은 손님도!)
가게 안을 밝히는 조명들.
어두운 조명 아래 오래된 가게 집기들과
잘 보면 천장이 일반 벽지가 아니고 조직이 보이는 천 같은 걸로 마감이 되어 있는데,
천장뿐만 아니고 가게 벽면도 같은 마감.
덕분에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시대로 날아온 것 마냥 분위기가 색달랐다.
그리고 대망의 솥밥.
내가 주문한 건 기본 메뉴인 조금 솥밥.
(이 외에 전복 솥밥과 비건을 위한 채식 솥밥 메뉴가 있다)
가서 주문하면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해서
미리 메뉴 예약까지 하고 갔던지라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이 나왔다.
워낙 가게 안이 어두웠어서 사진이 흔들렸다.(라고 핑계를 대보며..)
솥밥 안에는 잘 양념된 밥 위에 새우, 칵테일 새우, 양송이버섯, 가마보꼬, 죽순 등등
정석대로 양념간장 살짝 얹어 같이 먹어도 맛있고,
나처럼 슴슴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밥 위에 올라간 재료들에 베인 양념으로 맛을 음미하는 것도 좋고,
같이 딸려 나온 반찬들을 곁들이는 것 역시 좋고.
천천히 킁가킁가 향을 즐기면서 행복한 시간을 누렸다.
먹다 보면 마지막엔 누른밥까지ㅎㅎ 햅삐.
매 끼니 밥이야 거르지 않고 매일 먹고 있었지만,
오랜만에 맛있는 밥을 먹는 것, 그 자체를 즐기면서 만끽할 수 있었다.
솥밥도 물론 맛있었지만,
식당이 주는 분위기가 더해져서 그 맛이 더 배가 된 기분.
귀한 곳을 경험할 수 있어 행복했다.
너무 늦게 왔지만, 이제라도 오게 되어 좋았어😍
+ 다음엔 저녁즈음 혼자 가서 조용히 맥주와 함께 즐겨보고 싶구낭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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